심플리 리치
지은이 : 리치 디보스
발행처 : 아름다운사회
펴낸날 : 2014년 10월 23일
밑줄쫙
어느새 나는 동기부여 연설가로 불렸는데 내가 한 여러 연설 중에서도 특히 '행동, 태도 그리고 환경'이 마음에 남는다. 많은 사람이 두려움과 의심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지만 행동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해보겠다는 긍정적인 태도가 행동하게 만든다. 긍정적인 마인드는 올바른 환경 안에 속해 있거나 의도적으로 그 안에 들어가야 계발할 수 있다.
긍정적인 환경이 긍정적인 태도를 낳고 긍정적인 태도가 있어야 긍정적인 행동이 나온다. 나는 긍정적인 환경 덕분에 어린 나이에도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펄펄 날았다. 좋은 사람들과 어릴 적 경험은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고 내 미래를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34)
뉴트리라이트의 창시자는 칼 렌보그 박사다. 그는 카네이션 사(20세기 초에 설립된 미국의 유제품 제조회사 - 역주)와 콜게이트 사(20세기 초에 설립된 미국의 개인위생. 일상용품 제조회사 - 역주)의 중국 지사에서 중국인의 영양 상태를 연구하던 연구원이었다. 흥미롭게도 그는 시골에서 채소를 먹고사는 농민이 도시인보다 건강하다는 것과 많은 중국인이 우유를 먹지 않아 골다공증에 잘 걸린다는 걸 발견했다. 중국인의 지혜가 담긴 전통 한방의학도 그에게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1926년 상해혁명이 일어났을 때 렌보그 박사는 시민을 돕다가 투옥되었다. 제대로 먹지 못한 채 1년간 옥살이를 하는 동안 렌보그 박사는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감옥 마당에 자라는 풀을 직접 뜯거나 간수에게 달라고 부탁해서 죽을 만들었고, 철분을 보충하기 위해 녹슨 못을 함께 넣어 끓였다. 영양학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렌보그박사는 다른 수감지들보다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다.
석방 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캘리포니아 주의 샌페드로에 정착해 낮에는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고 밤에는 직접 키운 식물로 건강식품을 개발했다.
1935년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건강식품을 직접 제조 및 유통하는 일을 시작했다. 제품의 성분과 효능을 소비자에게 정확히 알리기 위해 그는 시중 약국을 통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혼자 고객을 상대했지만 판매원을 모집하면서 그 수가 점점 늘어났고, 4년 후에는 드디어 '뉴트리라이트'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세워 연매출 2만 4,000달러를 기록했다. 그는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직접 가꾸던 유기농 농장에서 큰 낫을 들고 더블엑스(뉴트리라이트사가 최초로 만든 전강식품 이름- 역주)의 주원료인 알팔파를 베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비타민을 매일 먹는 사람들이 많은 오늘날에는 '유기농'이나 '항산화성분''파이토케미컬(식물내재영양소-역주)' 같은 용어가 낯설지 않지만 당시에 그런 단어는 렌보그 박사처럼 시대를 훌쩍 앞선 과학자나 쓰는 단어였다.
그러나 제품의 뛰어난 효능만으로 사업을 크게 키울 수는 없었다. 뉴트리라이트의 성공에는 당시로선 아주 낯선 개념이자 오늘날 다단계 마케팅이라 불리는 특이한 마케팅플랜이 있었다. 암웨이도 자사 제품 유통에 이 플랜을 채택했고 뒤를 이어 많은 직접판매회사들이 다단계 마케팅 방식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81-82)
설령 외부적인 문제가 생겼을지라도 우리는 사업방식 자체는 분명 옳다고 확신했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제안한 제품 및 플랜을 믿고 함께하는 파트너들의 미래가 곧 우리의 미래라는 상생 마인드가 옳다는 믿음도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뿐 아니라 파트너가 또 다른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그들의 미래도 준비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이 사업의 본질임을 알고 있었다.
이 대단한 기회를 붙잡는 조건은 단 하나다. 거액을 투자해 공장이 나 회사를 세워야 하는 것도, 직원을 고용해 관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신이 원하는 크기만큼 자유롭게 스몰 혹은 빅 비즈니스로 해보려는 마음자세 하나만 있으면 된다. 성공하고 싶은 간절함, 열심히 일하는 자세 그리고 남이 성공하도록 돕고 싶은 열망,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 믿음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생긴 것이다. (89)
기존의 FRISK에서 이름을 바꾼 우리의 첫 작품 L.0.C.(Liquid Organic Cleaner 유기농 액체세제 - 역주)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우리는 보다 다양한 제품라인업을 구성할 발판을 마련했다. 그 제품이 성공한 첫 번째 요인은 값산 석유 찌꺼기가 아닌 코코넛오일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천연제품이라는 데 있었다. 초기의 제품 안내서에는 L.0.C. 를 채소세정제로 표기했다. 이 제품은 천연이라는 장점뿐 아니라 다른 제품에서 볼 수 없는 탁월한 세정력과 얼룩제거 능력이 있어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마침 사회적으로도 유기농 천연제품에 대한 관심이 막 생기기 시작한 때라 타이밍도 좋았다.
석유 찌꺼기를 원료로 만든 세제류는 환경과 수질을 오염시키는 주범이다. 그런 세제로 설거지나 세탁을 하면 찌꺼기가 하수도로 흘러 들어가 하천에 거품을 만들고 오염시켜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한다. 그러나 L.0.C. 는 생분해성이라 일정 시관이 지나면 불에서 자연 분해되고 고농축이기 때문에 포장이나 운송비를 절감해 환경보호에도 일조했다(이건 수십 년이 지나서야 인정을 받았다)
두 번째로 만든 제품은 SA8이라는 세탁세제다. 이 제품 역시 생분해성 계면활성제를 썼고 고농죽이었다. 뉴트리라이트 시절부터 시대를 앞선 제품을 취급한 우리는 암위이 제품으로도 환경보호에서 시대를 앞선 주자였다.
우리가 미국적 방식, 즉 American Way를 강조하기 위해 계품 용기에 적, 백, 청색으로 로고를 그려 넣자 성조기로 포장을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회사의 로고는 아주 심플했다. 방금 타자기에서 찍은 듯한 느낌의 대문자 AMWAY가 그것이다. 포장에도 우리의 변치 않는 슬로건인 '집까지 배달해 주는 집안 관리 노하우(Home Care Knowhow at Your Doorsteps)' 란 문구를 넣었다.
세제류 몇 가지를 추가로 라인업 하자 우리 회사는 곧 '비누회사'(어떤 이는 비꼬는 의미로 썼겠지만)로 유명해졌다. 우리 회사의 전략을 묻는 사람과 사업자들에게 나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비누죠! 암웨이가 왜 비누를 파느냐고요? 간단명료해요. 비누를 쓰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 쓰고 나면 반드시 또 사야 하죠. 비누를 써보는 데 샘플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불이 되니까 안심하고 사서 써볼 수 있지요."
하지만 아무리 누구나 쉽게 쓰는 세제라 해도 우리는 사업자들에게 L.O.C. 를 본인이 먼저 써보고 그 장점과 효과적인 사용법을 숙지해 고객에게 시연해 주도록 권했다. (100-101)
우리는 친구로부터 물건을 사는 것, 제품의 효과를 직접 보여주고 집까지 배달해 주는 것 그리고 고객을 위한 부가가치 창출이 암웨이 사업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일회성 판매 목적보다 장차 파트너 사업자가 될 가능성이 큰 고객을 만니는 데 목표를 두고 후원 활동을 한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 등록하거나 누군가가 제품을 사면, 혹은 사업파트너에게 새로운 고객이 생기면 굉장히 신나고 즐거웠다.
뉴트리라이트 유통 사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이와 나는 마이팅거&캐슬베리가 고안한 보상플랜을 개선할 필요를 느꼈다. 성취 정도에 근거해 보다 공정하고 높은 수입을 보장하는 보상플랜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많이 고심하고 많은 사업자들의 피드백을 검토한 끝에 1959년의 어느 날 제이와 나는 우리 집 부엌 바닥에 긴 두루마리 포장지를 펼쳐놓고 노력순으로 정확히 보상이 돌아가는 독특한 수익구조를 그렸다.
각자의 매출 실적뿐 아니라 본인이 후원한 각 파트녀의 매출 실적, 나아가 그 파트너의 파트너의 실적까지도 본인의 수입에 영향을 미치는 공정한 보상플랜이었다. (102)
우리는 사업자의 한 후원 라인에서 밑으로 200단계 혹은 그 이상 가는 다운 파트너들의 실적까지도 본인의 수입에 영향을 미치는 보상플랜을 만들었다. 또 한 라인의 다운 파트너만 해도 1,000명 이상 나오는 네트워크가 언젠가 생기리라고 예상했다. 도대체 돈이 어디서 멈출 수 있는 걸까? 그걸 알기 위해 우리가 그토록 많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계산을 해본 것이다.
우리는 그 보상플랜을 '패스 - 스루' 방식이라고 명명했다. 패스-스루 방식은 자신의 실적과 다운 파트너들의 실적이 비례하면 할수록 암웨이 사업자가 더 많은 보상을 받도록 함으로써 수입의 공평성과 확장성을 보장한다. 이런 후원수당과 함께 우리는 덧 개의 그룹을 후원했는지와 그룹의 총매출 실적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성취 정도를 구분해 보너스 금액을 정했다. 그때 만든 핀 레벨 시스템, 즉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등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성취 정도에 따라 구별해서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만든 것이 핀 레벨인데 심플하면서도 강렬하게 축하할 때 쓰는 인정의 상징으로 보석 이름이 어울리겠다고 보석의 이미지가 빛나는 성취와 궁합도 맞고 말이다. (103)
암웨이 사업자들이 성공하기 위한 제일의 필수 조건은 제품력이다. 우리가 홍보 버스를 운행한 이유는 회사 입장에서 사업자들을 돕는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사업자의 성장을 도와야 회사도 성장한다는 암웨이의 경영 원칙을 적용한 셈이다. 사업자들이 우리에게 "아무도 암웨이가 뭔지 들어본 적이 없다는군요. 암웨이란 회사가 존재하기는 하느냐는 의심까지 받는걸요"라며 고충을 털어놓았기 때문에 그들의 비즈니스를 도울 도구로써 홍보 버스를 운행한 것이다. 제이와 나는 암웨이 회사와 제품을 홍보하는 데 헌신하는 사업자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도우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의 파트너 사업자들은 우리를 믿고 인생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
다. 암웨이가 성공해야 사업자들이 성공한다. (114)
그때만 해도 암웨이 비즈니스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우유배달부처럼 정기적으로 제시간에 고객을 방문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암웨이가 제조회사인가, 유통회사인가?"라는 홍미로운 물음이 생겼다. 사업이 성장하면서 제품이 중요하다는 걸 점점 더 깨달았지만, 제품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독립 사업이라는 점이다.
암웨이 제품을 독자적으로 유통시키는 사업을 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도 이 사업을 하도록 후원하는 것이 암웨이 사업이 다른 사업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자 높은 수입을 보장받는 길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업자들에게 제품 전달과 후원 중 어느 한쪽에만 쏠리지 말고 균형 있는 사업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물론 암웨이의 1차 수입은 제품 전달에서 생긴다. 그러나 무조건 팔기만 한다고 사업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제품 전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이 사업 기회를 알려 함께하도록 돕고 또 그들도 다른 사람을 후원하게 돕는 후원 활동이다. (115)
" 무슨 주제로 스피치를 할까요? 암웨이 비즈니스에 대해 얘기할까요?"라고 문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자유와 자유기업에 대해 말해주세요. 그게 우리가 듣고 싶은 주제예요. 암웨이 사업을 어떻게 하는지는 다 알아요. 그 얘긴 우리도 할 수 있어요. '왜'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 그걸 가르쳐주세요. 왜 우리가 힘들게 노력해서 자신의 독자적인 사업을 구축해야 하는지, 그것이 왜 개개인과 국가의 성장에 중요한지 말해주세요.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길 원해요.
나는 그 주제로 연설을 했고 그날 사업자들에게 이전에 한 그 어떤 연설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자유로운 미국이 제공하는 성공 기회! 그것이 핵심이다. 가진 돈이 없어도 큰 꿈과 비전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고 성공할 기회를 보장받는 미국의 자유기업 시스템, 이것이 곧 암웨이 사업이 아닌가! 유명한 내 연설문 '4단계(The Four Stages) 해보거나 울거나(Try or Cry)' 그리고 4개의 바람(The Four Winds)의 주제가 모두 이것이다. (121)
결국 FTC는 암웨이의 보상플랜이 피라미드 상술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 이유는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행위에서 수입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최종소비자의 제품 구매 총액에 따라 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FTC의 판결은 오히려 암웨이의 보상플랜을 합법적 직접판매 방식의 모법사례로 인용하는 공정적인 결과를 냈다.
이후부터 지금까지 다른 직접판매 업체들은 암웨이의 보상플랜을 따라 하려고 계속 시도하고 있다. 심지어 FTC는 대중매체 광고도 하지 않는 암웨이 제품에 대한 소비자 호응도가 아주 높고 전체 시장점유율이 낮은 작은 회사의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동종제품 시장에서 소비자 충성도 3위를 차지한다는 점을 공식 인정하면서 암웨이가 새롭고 신선한 사업모델을 개발했다고 인정했다. 암웨이의 독립 사업자들은 프록터 & 갬블(Procter & Gamble, P&G. 신시내티에서 1837년 창업한 미국 최대의 개인위생용품 제조판매사 - 역주)처럼 암웨이 전체 매출액의 두 배가 넘는 돈을 광고에 쏟아붓는 대기업에 맞서 '진정한 경쟁'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소비자를 끌어당긴 것이다. 또한 암웨이 사업의 소득은 온전히 자신이 노력한 결과에 비례한다는 사실돈 밝혀졌다. 심지어 어면 환사는 사건 종결 후 나를 만나 암웨이 비즈니스를 새롭고도 유일무이한 사업모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FTC 제소 건을 통해 합법적인 다단계 관매 방식의 법적 표준이 등장했고, 지금도 모는 다단게 업체가 이 법에 따라 회사를 운영 및 관리한다.
(128)
남이 꾸지 않는 꿈을 감히 꾸거나 남이 해보지 않은 새로운 걸 시도하는 누군가에게는 항상 비판자가 들러붙는다.
처음 암웨이 사를 차렸을 때 우리는 가정용 세제 업계의 1인자가 되고 싶었다. TV는 그런 우리를 코미디 프로그램 소재로 쓰면서 비아냥거렸지만, 우리는 유명세를 치르는 것이려니 하고 더 큰 성공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누구든 평범한 대중 속에서 눈에 띄면 비판자들의 관심을 받는다. 우리는 폭풍을 뚫고 묵묵히 전진했다.
많은 시런을 겪으면서 우리는 어떠한 도전을 만나도 '이 또한 극복하고 지나가리라'는 결의로 대처했기에 다음 장에서 소개할 암웨이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 준비도 오히려 더 잘 갖추었다. 그것은 바로 암웨이 글로벌의 태동이다. 우리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분명 엄청난 도전이 따를 거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가장 기대하지 않던 나라들이 우리의 '미국적 방식'을 두 손 벌려 환영했다.(139)
물론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정부 규제까지 심한 국가에 진출한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암웨이는 아시아 어느 국가에든 최초로 진출한 직접판매 회사라 세금이나 현지 법, 기타 상황이 불확실한 경우가 많았다. 중국 진출도 시작했다가 갑자기 중국 정부가 우리 사업을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바람에 중단해야 했다. 결국 사업 허가를 받았지만 다른 시장에서와 달리 중국은 소매 대리점을 통한 판매밖에 할 수없다.
한국 정부도 초기에는 직접판매 비즈니스를 오해해 수입품인 암웨이 제품이 자국의 무역수지 적자에 한몫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우리는 암웨이 사업이 한국의 경제 발전에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증명했고 이제 암웨이는 한국에서도 환영을 받는다. 자기 사업 기회에 열광하는 수천 명의 한국인이 대형 경기장에 모여 내 연설을 듣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뭉클하다. 인도와 태국에도 소매 대리점 형태로 진출해 암웨이 사업을 현지 상황에 맞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태국, 인도, 중국에서 만나는 근사한 현대식 암웨이 빌딩과 로고를 보는 건 정말 감동적이다. (149)
소련과의 냉전 시대를 직접 겪으며 평생 자유기업 시스템을 지지해 온 한 사람으로서 나는 1990년대 이후 암웨이가 구소련과 동유럽 국가로 진출하는 것을 목도했을 때의 기쁨과 감동 역시 잊지 못한다. 이 지역에 암웨이 제품센터가 들어서자마자 처음 만나는 고품질의 세제를 사기 위해 사람들은 엄청나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헝가리의 경우 진출 첫해에 무려 8만 5,000명이 등록했다. 처음 그들 나라를 방문했을 때의 어둡고 칙칙한 느낌과 미국에서는 너무 넘쳐나 감사한 줄도 모르는 많은 불자가 부족한 모습에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오랫동안 자유를 빼앗긴 그들 나라에 암웨이가 들어가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고 좋은 제품을 쓰게 했다고 믿는다.
90년대에 오픈한 브라질 암웨이는 남미 시장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제이와 내겐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20대 시절, 타고 나간 배가 난파당했음에도 꿋꿋이 남미의 국가들을 끝까지 둘러볼 때 언젠가 우리가 남미 여성들만을 위한 특별한 화장품을 만드는 다국적기업을 차려 그곳에 다시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중국 변방의 시골 마을 사람이든 남미 적도의 신홍국 과테말라 사람이든 오래전부터 민주 국가이던 호주 사람이든 모두들 공통적으로 마음에 담아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보다 나은 삶을 향한 열망이다.
2011년 암웨이의 <세계시민보고서(Global Cizenship Repor)>에 기고했듯 사람은 누구나 "더 나아질 것을 믿는다(Believe in Belter)."' 암웨이 사가 전 세계에서 사업적으로도 성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이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 자신과 가족, 지역 공동체, 나아가 국가를 위해 더 나은 삶을 건설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는 것이 무척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150)
특히 2003년 시작한 암웨이의 '원 바이 원' 불우아동 돕기 프로젝트로 그간 1억 9,000만 달러의 후원금을 모아 전 세계 1,000만 명 이상의 불우아동을 도왔다. 2012년 한 해만 해도 전 세계 암웨이 사업가와 직원이 총 20만 시간의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암웨이는 사람을 돕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구도 돕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것으로 출발한 기업답게 암웨이가 나가 있는 모든 국가에 서 우리는 자동차 배기가스 감소, 수자원 보호, 쓰레기 배출 감소, 생태계 보호 등 환경보호 사업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자랑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정말로 우리의 기업철학에 자부심을 느낀다. 제이와 내가 물려받은 유산 중 하나는 사람들의 가능성을 믿고,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믿으며, 다른 사람이 스스로를 돕도록 도움으로써 그런 믿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동안 이러한 우리의 믿음이 엄청나게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나는 늘 긍정적인 사람으로 살아왔고 누구를 만나든 상대방에게서 단점보다 장점을 찾으려 한다.
1980년, 그러니까 암웨이 사업이 아직 미국 밖을 벗어나지 않았을 때만 해도 우리는 본사를 에이다에 계속 두려고 했다. 그러나 국제사업이 점점 활발해지자 직원들이 말했다.
"두 분 생각과 달리 에이다는 더 이상 암웨이의 중심지가 아니에요. 암웨이의 중심은 전 세게 곳곳에 있어요. 사실 암웨이의 진짜 중심지는 중국이에요. 중국이 암웨이의 최대 시장이기 때문이죠. (151)
나는 지금도 4개의 바람' 내용을 줄줄 외울 기억하면 되기 때문이다. 민지 북풍면서 만난 바람의 방향과 종류만은 좋지 않은 바람이다. 성공할 수 없다며 포기하기나 자신의 환경을 탓한다면, 그건 차디찬 북풍이 그 사람을 밀고 들어와 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동품은 악천후의 전조 중상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때론 내일이 불학실해 보인다. 그러나 동풍이 외투와 우산을 미리 챙기라는 신호인 것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것 같으면 미리 준비하는 . 지혜를 발휘해아 한다. 조심해야 할 겼은 오히려 남풍이다. 속기 쉬우니까. 마냥 따뜻한 남풍처럼 내가 지금 송승장구하고 있다는 생각은 자치 조십
성을 원게 하고, 현 상황에 안주해 해이해지게 만든다. 그렇게 느슨해
지려는 순간, 서풍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서풍은 서늘하고 상쾌한
바람이다. 시원한 서풍을 맞으면 먼 거리도 지치지 않고 뛰어갈 수있
다. 현상황을 다시 검토하고 열정적으로 사업하라. 그리고 성장하라.
이 연설을 들으면 사람들은 바다로 나간 배를 생생히 그밀 수 있다.
더불어 동서남북으로 부는 바람을 맞으며 항해하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다. 자신의 사업 현황을 배라고 상상하고 지금 무슨 바람을 맞으며
항해하고 있는지 실감나게 판단해보는 것이다. 암웨이 사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내 연설은 지금까지도 '4개의 바람'이다. (160)
그건 바로 여러분이 후원한 파트너를 돕는 여러분의 태도니까요. 여러분이 누군
가를 도와야 그도 여러분을 도울 수 있다는 것, 그것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어요. 진부한 이야기라고요? 하지만 그게 암웨이인걸요.
암웨이는 정말 많은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사업이다. 내가 1989년 월트 디즈니가 남긴 글에서 감명을 받은 후 만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사람들 (Life Enrichers)'이라는 연설이 있다. (164)
내용인즉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늘 남의 생각과 노력을 비판하는 '우물에 독약을 치는 사람들(well- poisoners)'과 성실히 세금을 내고 직장에 열심히 다니는 가장이지만 자기 집 앞마당 밖의 일에 관심이 없고 도울 생각도 없는 '잔디 깎는 사람들(lawn mowers)', 그리고 도움을 주는 행동이나 격려의 말로 다른 사람의 삶이 나아지도록 돕는 '삶을 업그레이드하는 사람들(Life Enhancers)'이 그것이다. 그 글을 읽고 나는 "그래, 세 번째 사람들이 바로 암웨이를 하는 사람들이지!"라며 무릎을 쳤다. 내 연설 제목으로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사람들'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좀 고쳤지만 아이디어는 분명 디즈니가 남긴 말에서 따온 것이므로 연설에서도 나는 항상 디즈니에 게 공을 돌렸다.
제품 판매로 돈을 벌어 자신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후원해 그들도 자기처럼 나은 삶을 살도록 기회를 나눠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그러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이 이 기회를 통해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해야 한다. 삶의 풍요는 물건을 팔아돈을 벌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와 함께 성공한다는 마인드를 가진 긍정적인 사람들이 모인 비즈니스에서 이뤄진다.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이 바로 암웨이 비즈니스의 근간이 되는'개념이다.
(165)